몽골/재밋는몽골이야기

몽골 설날풍경,,,세배와 음식 & 성황당

몽골승마클럽 2007. 1. 23. 20:37

# 세뱃돈은 아랫사람이 웃어른에게 드려/음식대접 받을땐 식사후 트림해야 예의

몽골의 설날은 참 요란하다. 전가족이 한데 모여 세배하고 성황당을 참배하는 등 새해맞이를 한다.몽골인들도 우리와 같이 매년 설날(음력 1월1일)을 「차강 르」(하얀 달)라고 부르며 명절로 지낸다. 몽골인들은 설날을 최대 명절로 삼아 이날부터 3일간 휴무한다. 차강 사르는 몽골인들이 차강 즉 흰색을 좋은 의미로 사용하는데서 유래했다. 차강 사나(좋은 마음씨) 차강 이데(좋은 음식) 등 차강은 고급스럽고 귀한 것에 사용한다. 차강 사르도 이름이 보여 주듯 가장 좋은 달」이란 뜻이다. 희망을 갖는 달이기도 하다. 몽골인들은 「차강 사르 다음은 봄」이란 말을 즐겨 쓴다. 「겨울이면 봄이 멀지 않다」는 말이 있듯 2월말에도 영하 20∼30 도의 혹한이 계속되지만 몽골인들은 이때부터 봄을 맞이하려 마음의 자세를 갖춘다.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가 힘들었던 사람들은 설과 함께 새봄이 오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을 차강 사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각오는 새롭지만 몽골인들은 유별나게 차강 사르의 의미를 강조한다. 새해가 밝아오는 것과 함께 새해의 풍요를 기원한다. 이날 차례는 지내지 않는다. 그러나 아침 6시반쯤 해가 뜨기 직전에 전가족이 모두 모여 어른께 세배하고 한햇동안 건강하고 모든 일이 잘 풀려 가도록 하는 등 덕담을 주고 받는다. 몽골인들의 세배는 나이가 어린 사람이 나이든 사람의 두손을 아래에서 위로 받쳐들면서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라고 말한다.
나이든 사람은 푸른 비단천을 두손에 펼쳐든채 「새해 복많이 받아라」 「건강해라」 등의 덕담을 들려준다. 덕담을 주고 받을 때는 양볼을 맞대고 포옹하듯 끌어 안는다. 구소련인들의 인사법을 받아들인 것이긴 하나 이제는 자연스럽게 됐다. 세배를 받을 때는 푸른 천을 들고 전통의상 「델」을 입어야 한다. 델을 착용할 때는 모자를 쓰는 것이 전통이었지만 최근에는 생략하는 경우도 종종있다.


문학박사 체른 소드놈은 『유목의 풍요로움과 가문의 안녕을 비는 기원 등 전통 차강 사르 세시풍속이 많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에게는 그러나 지금까지 남아있는 세시풍속도 흥미롭다.이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세뱃돈. 당연히 어른들로부터 세뱃돈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실수를 연발하는 순간이다. 몽골에서는 아랫사람이 웃어른에게 세뱃돈을 드린다. 그러면 어른들은 아랫사람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멋모르는 외국인들이 실수를 연발,배꼽을 잡고 웃기 일쑤다. 세뱃돈을 드리지도 않은채 어른들이 주는 선물만을 받길 원하면 버릇없는 젊은이가 되고 만다. 세뱃돈은 많을수록 좋지만 보통 몽골 화폐단위로 1천∼2천 트그르그(한화 약 2천∼4천원)를 봉투에 넣어 준비하면 무난하다. 어른들이 준비하는 선물로는 초콜릿 사탕 학용품 장갑 등 다양하다. 세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문간에서 하나씩 선물을 나눠주면서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몽골인들은 설날 양고기 밀가루 등을 이용해 여러가지 음식을 준비한다.

양을 잡아 한마리를 통채로 삶아 내놓는 「오츠」가 대표적이다. 몽골인들은 가을이 시작되면 다음해 설날을 위해 살이 쪄서 통통한 양을 한마리 잡아 얼려 놓는다. 섣달 그믐날 이 양을 커다란 솥에 삶아 차려 놓고 세배꾼들이 올때마다 한점씩 빚어 술안주로 한다. 미운 며느리 엉덩짝만 하던 양 궁둥이 살은 세배꾼이 몇차례 다녀가면 홀쭉하게 줄어든다. 살기가 괜찮은 집에서는 손님들을 위해 오츠를 2∼3개 준비하지만 평균 1개씩 장만한다. 하나뿐인 오츠를 아끼기위해 일부 가정에선 은 오츠는 설이 끝날 때까지 그대로 둔채 양고기를 삶아 내놓기도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큼만 하라」는 우리와는 달리 「늘 차강 사르처럼 풍요롭기를 기원」하는 것이 몽골인이다. 차강 사르를 며칠 앞둔 95년 1월 버스를 타고가다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만원 버스에 흔들리며 가는데 옆에 있던 아가씨가 옆구리를 자꾸 찔렀다. 사내의 심정은 같은지라 은근히 묘한 상상(?)과 호기심이 발동했다. 곁눈질로 쳐다보니 얼굴모습은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아가씨처럼 깨끗하고 곱상했다. 옷차림은 몽골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바바리 코트에 노랑 스카프 그리고 멋쟁이 밍크모자를 쓰고 있었다. 아가씨의 옆구리 찌르기는 오랫동안 계속됐다. 나에게 정식으로 프로포즈하는걸까 생각하니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당황해서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좋을지 몰랐다. 몽골인들이 아무리 사랑표시를 자유롭게 한다지만 노골적으로 그처럼 나올줄 몰랐다. 「지가 먼저 살자고 옆구리 꾹꾹 찌른다」지만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를 내 아가씨와 눈을 맞추고 허리께로 눈을 돌리던 난 소스라치게 놀랐다. 마대속에 껍질을 벗겨 담은 양의 다리가 내 옆구리를계속 찌르고 있었던 것이다. 겸연쩍어 「씩」 웃자 아가씨도 마주보며 고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섣달이면 이처럼 대중교통수단에서 통채로 잡아가는 양을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처음보는 외국인들은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더 심한 것은 살아 있는 양을 끌고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이다. 교통수단이 신통치 않은 몽골인들은 시내버스에 양 염소 등 작은 가축들을 싣고 다닌다. 오츠와 함께 뺄 수 없는 것으로 짚신짝처럼 생긴 밀가루 과자「보브」, 찐 만두 같은 「보즈」, 군만두 같은 「호쇼르」, 물만두와 비슷한 「반시」를 들 수 있다. 오츠가 차려진 상위 에는 보브를 높이 쌓아 만든 접시를 놓아둔다. 보브위에는 사탕 과 차강이데를 30㎝쯤 얹는다. 환갑집의 상차림같다고 보면 된다. 몽골에서 이 보브란 말을 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보브는 남성의 성기란 뜻도 있다. 함부로 보브라 말하면 한 바탕 웃음거리(?)가 되기 싶다. 남성이 여성에게 보브 가져가라고 하면 노골적인 음담이 되기도 한다. 어른을 모시고 사는 집에서는 보즈를 3천∼4천개씩 만들어 놓고 세배객이 올 때마다 삶아서 대접한다.손님대접은 의무로 해야하지만 손님도 차린 음식은 먹어주는 것이 예의이다. 차린 음식을 먹지 않으면 주인의 안색이 변한다. 맛이 없어도 포만감을 느낀 것처럼 맛있게 먹어야한다. 그리곤 트림을 한다. 서구인들은 펄펄 뛸 일이지만 몽골인들은 잘 먹었다는 표시로 너그럽게 봐준다. 시골 일부지방에서는 의무적으로 트림을 해야만하는 풍습도 있었다.

설날 성황당을 찾아가 참배하는 것도 특이하다. 아침 부모님께 세배를 마친 가족들은 우유나 치즈 술을 준비해 집에서 가까운 성황당으로 가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린다. 해가 떠오르면 성황당을 시계방향으로 3바퀴 돌면서 한해의 복을 빈다. 그리고는 준비해온 술이나 우유 제품을 성황당에 쌓아 높이를 더한다. 나 이든 여성들은 우유를 동쪽 방향으로 뿌리면서 액막이를 한다. 차르찰이라는 주걱같은 것으로 우유를 3번 뿌린다. 해뜨기 직전에는 3백∼4백명의 인파가 모여들어 성황당 부근은 시장터를 방불케한다. 최근에는 음식대신 돈을 바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현대화이기도 하고 돈을 벌게 해달라는 사람들의 기도가 그만큼 많아졌다는 걸 의미한다. 참배객이 물러나면 부모 없는 고아나 신체 장애자들이 몰려들어 돈을 걷어 간다. 그다 음은 까치 까마귀 독수리들이 날아와 신년 파티를 벌인다. 설날은 인간과 날짐승까지도 풍성하다. 성황당은 울란바토르 시내는 물론 교외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성황당이 없는 시골에서는 섣달 그믐날 밤 젊은이들이 눈으로 임시 성황당을 만들어 신을 불러 들이는 의식을 거행한다. 젊은 이들은 집주위의 눈을 끌어 모아 놓고 물을 부어 꽁꽁 얼린다. 집 주위에 눈이 없으면 4∼5㎞ 떨어진 먼곳에서 말을 이용해 눈을 실어 오기도 한다. 그 다음 젊은이들은 말을 타고 2∼ 3㎞ 떨어진 동쪽으로 달려간다. 이곳에서 횃불을 만들어 성황당 신을 불러 들이는 의식을 거행한다. 3명 또는 9명의 젊은이가 말머리를 동쪽으로 향한채 횃불을 높이 들고 「우리는 영명하신 당신의 힘을 빌리고자 여기에 왔습니다」고 고하고 연장자의 구령에 따라 3번 머리 숙여 절한다. 그리고는 횃불을 들고 2열로 나란히 서서 겔 쪽으로 말을 몰아 온다. 성황당신이 가는 길을 밝혀주는 것이다. 불의 신을 이용해 자연을 유랑하던 성황당신을 모셔오는 것이다. 돌무덤이란 형체가 없어 자리를 잡지 못하던 성황당 신은 이때부터 눈으로 만든 임시 성황당에 터를 잡는다. 눈성황당이 성황당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하는 시간이다.〈글 신현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