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재밋는몽골이야기

몽골 유목생활 이모저모

몽골승마클럽 2006. 12. 25. 20:19

몽골 유목생활과 전통복장

 

젖짜기
가축의 젖은 고기와 함께 사람의 귀중한 식량원이다. 특히 여름은 젖이 풍부하기 때문에 '하얀 음식'이라 불리는 유제품이 음식 중에서 큰 위치를 차지한다. 5종 가축 가운데서 소가 가장 많은 젖을 공급한다. 다른 가축은 여름에서 가을까지만 젖을 짜지만 소는 거의 일년 내내 젖을 짠다. 풀베기 작업도 주로 소에게 겨울동안 풀을 공급하기 위해서이다. 양과 염소의 젖짜기는 어미 가축의 머리를 엇갈리게 하여 줄로 묶고 뒤에서 젖꼭지를 쥐고 짠다. 젖을 짠 뒤 줄을 잡아당기면 묶어 놓은 줄은 쉽게 풀린다. 새끼는 사람이 짜고난 뒤 남은 젖을 먹는다.
젖을 짤 때 양과 염소는 어미 가축을 묶지만 말, 소, 낙타 등 덩치가 큰 가축은 새끼를 붙들어 땅바닥에 처 놓은 '젤'이라는 줄에 묶는다. 큰어미를 붙드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기 때문이다. 새끼를 묶어 놓으면 어미는 자기 새끼 곁을 떠나지 않는다. 송아지는 저녁 무렵에 묶어 놓고 아침에 어미소 젖을 짠 뒤 놓아준다. 이에 비해 말은 아침에 게르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말떼를 데려와 망아지를 붙들어 메어 놓은 후 낮에 젖을 짜고 저녁에 풀어준다. 말 젖은 금방 고여 저절로 흘러내리기 때문에 하루 2시간마다 5회에서 8회 정도 짜야한다. 또한 말, 소, 낙타의 젖을 짤 때는 미리 새끼에게 젖을 약간 먹이는 최유행위가 필요하다. 젖짜는 동안 새끼를 어미 옆에 세워 놓아야 한다.
낙타는 하루에 3∼4회 젖을 짠다. 고비지역에서만 낙타젖을 짜고 기타 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짜지 않는다. 젖을 둘러싸고 사람이 어미와 새끼 사이에 개입하는 방법은 이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다. 송아지에 입마개를 붙이거나 어미 염소에 젖덮개를 씌우기도 한다. 크게 자라서도 젖을 먹는 송아지, 새끼 염소, 새끼 양은 코에 앞이 뾰족한 막대기를 찔러 놓는다. 이렇게 하면 나무가 어미 유방을 찌르기 때문에 젖을 먹일 수 없게 된다. 또 하나의 방법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어미와 새끼를 공간적으로 분리하는 방법이다. 즉 어미와 새끼를 각각 다른 무리로 나누는 방법이다. 말이나 낙타는 모자간의 결속이 굳건하여 이 방법을 쓰지 않는다. 소는 여름에서 가을까지만 아침에 젖을 짠 후 저녁에 젖을 짤 때까지 송아지를 다른 소와 별도로 게르 근처의 목초지에 방목한다.
젖짜기는 원래 새끼가 먹을 젖을 어미에게서 착취하는 수단임과 동시에 목축기술상 몇 개의 기능을 한다. 하나는 새끼나 어미를 묶거나 젖을 짜거나 결합하거나 하는 과정을 통하여 온순하게 길들인다. 즉 사람에게 순응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 하나는 유목민에 의하면 새끼의 추위 등에 대한 내성이 강해지고, 젖을 빨리 떼면 가축 자신에 매우 좋은 효과가 있다고 한다.


* 아이락 축제
'아이락 축제'는 가축이 공간 가득히 늘어나기를 기원하는 제전이다. 대개 그 해 처음으로 말 젖을 짠 날이나 그 말 젖을 발효시켜 아이락을 만든 날 이 행사를 거행한다. 말 젖을 짤 때는 먼저 망아지를 묶을 줄 '젤'을 게르 앞에 친다. 젤을 향으로 정화하고 그것을 고정시킬 두 개의 말뚝도 버터 등을 발라 축원한다. 높은 쪽 말뚝(젤의 두끝을 지면의 경사에 따라 높은 쪽, 낮은 쪽이라 부른다.) 옆에는 증식을 상징하는 풀이 심어져 있다. 말떼를 집 앞까지 데리고 와서 새끼 말을 붙들어 줄에 맨다. 짠 젖은 가죽자루에 넣고 휘저어 발효시켜 아이락을 만든다.
'아이락 축제'에서는 높은 쪽 말뚝에서부터 그 해에 첫 번째로 태어난 망아지를 매고, 다음에 두 번째와 세 번째로 태어난 망아지를 같은 식으로 맨다. 그리고 다른 망아지도 밧줄에 매고 처음 3마리는 남자가 젖을 짠다. 보통 젖짜기는 여자의 몫이다. 그러나 의례용 말젖은 남자가 짠다. 우유를 뿌리는 의례도 일반적으로 여자의 몫이다. 그러나 이 때는 남자가 뿌린다. 말은 본래 남자의 영역이다.
우유를 뿌리는데 쓰이는 의례용 도구를 '차칠'이라 한다. 사각판에 있는 9개구멍으로 우유를 떠서 허공에 뿌린다. '체헤 엔 차드'라 외치면서 게르 오른쪽으로 돌고 망 주위도 3바퀴 돈다. 이 소리는 '유제품으로 배가 부르라'는 의미라고 한다.
'아이락 축제'를 몽골어로 '암말의 씨(곤)를 내는 의례'라 한다. 사람들은 이 씨(우르스)라는 단어를 여러 가지로 해석한다. 암말에서 짜서 뿌리는 우유라고도 하고 그것에 의해 내리는 풀의 성장의 근원이 되는 '비'라고도 하고 가축 증식의 근원이 되는 풀 그 자체라고도 한다. 또한 이 의례와 연회에 쓰이는 양고기라는 해석도 있다.
삶은 양고기는 그 해에 맨 먼저 태어난 망아지를 대신한다고 할 수 있다. 망아지를 붙잡은 바로 그 오오르가로 붙잡았기 때문이다. 이 양고기 일부를 젤을 맨 말뚝 옆에 서 뼈만 남을 때까지 태운다. 이것을 '씨를 녹인다'든가 '씨를 넣다'고 한다. 망아지 대신 양고기를 태워 하늘의 신에 바침으로써 내년에도 망아지가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씨'라는 관념에서 보면 곡식의 일부가 씨앗으로서 번식의 원천이 되듯이 자연이 준 선물의 일부를 자연으로 되돌림으로써, 그 혜택이 더욱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바램이 이 의례의 밑바닥에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씨', 즉 '생명의 씨'는 우유형태로 공중에 뿌려지고 1년 후 새로운 생명이 되어 탄생하는 것이다.


* 불까기
새끼 양 불까기는 '여분의 게르' 입구에 펴놓은 펠트 위에서 행해진다. '여분의 게르'는 곳간 등으로 쓰이는 예비 게르이다. 취사장으로 쓰거나, 봄 또는 추위가 엄습한 계절에 새끼 양이나 새끼 염소를 보호하는 장소로 쓰인다. 불까기는 추위나 더위가 극심한 때를 피해서 행한다. 남자가 칼로 음낭을 절개하고 고환을 떼어내어 이것을 통에 담는다. 이때 불을 피우는데, 연기는 정화를 위한 향불의 의미를 갖고 있다.
말의 경우는 2개의 막대기로 음낭 밑뿌리를 잡고 절개하여 고환을 꺼낸다. 불까기 작업을 하는 남자 주위의 불은 수술 후 상처를 소독하기 위해 쇠를 달구기 위한 것이다. 낙타는 말과 같은 방법을 취한다. 그러나 보통 음낭 뿌리를 묶고 고환이 자연스럽게 떨어지도록 하며, 낙타의 고환은 먹지 않는다.
불까기 한 수컷은 여러 용도로 이용된다. 불깐 말은 온순하고 인내심이 강하기 때문에 보통 승용마로 쓴다. 똑같은 이유로 불깐 낙타, 불깐 소는 운송용에 이용된다. 불깐 양은 신체가 크다. 연회시 차림 고기로서 또는 다른 양이 야윈 봄에 식량으로서 없어서는 안 된다. 불깐 가축이 온존될 수 있는 것은 목초지에 그 정도의 허용력이 있고 가축이 무리로 방목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불깐 가축을 활용하는 몽골 목축문화를 어떤 연구자는 '거세 가축문화'라 부른다.
불까기는 가장 기본적인 목축기술이다. 사람은 불까기를 통해 가축의 형질을 자신에 맞추어 보다 나은 것으로 바꾸어 왔다. 또한 불까기는 암수관계를 규제하고 무리를 안정시키는 역할도 한다. 나아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이는 가축을 만들어 낸다. 불까기는 젖짜기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효과를 지닌 목축기술이다.


* 가축 잡기
양을 잡을 때 남자가 양 앞다리를 잡고 명치를 칼로 찌르고, 그 구멍에 손을 넣어 손가락으로 대동맥을 끊는다. 양이나 염소를 도살·도축할 때는 피를 땅바닥에 흘리지 않는다. 복부에 고인 피를 퍼내 순대를 만들어 먹는다. 양과 염소는 잡는 방법이 동일하다. 그러나 소는 다리를 묶어 땅바닥에 쓰러뜨린 뒤 칼로 숨골을 끊는다.
말과 낙타를 잡는 경우는 드물다. 씨가축으로 쓴 늙은 양, 염소, 소는 불을 까서 고기냄새를 뺀 후 잡는다. 단, 어렸을 때 어미를 잃고 주인이 게르안에서 젖병으로 기른 가축과 같이 특별한 경우는 그 동안의 정분을 고려하여 주인이 죽이지 못하고 다른 집에 선물하여 처분한다. 가축은 야생동물과 같이 기질이 사납거나 사람을 보고 곧바로 도망가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람과 너무 가깝게 친숙해지거나 지나치게 손을 타서도 안되며 사람과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사람을 지나치게 따르는 가축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무리를 이루지 못하고 사람이 통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람과 적당한 거리를 만들기 위해 불까기를 통하여 가축을 선택해 왔다. 또한 사람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갓 태어난 새끼 양 관리나 젖짜기에 수반되는 여러 가지 작업도 거리 만들기에 도움이 된다. 이러한 작업들이 가축을 '야생'에서 '사람'에 가깝게 하는 노력이라 한다면, 유목민이 가축의 관리에 가능한 한 힘을 아끼려 하는 것은 반대로 가축을 사람에게 너무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유목민은 통상적인 유목작업 중에도 의사소통 방법으로 사람과 가축의 거리를 재고 있다. 가축마다 쫓는(사람에게서 멀리하다) 소리, 멈춰 세우는 소리, 불러들이는(인간에게 가깝게 하다) 소리가 정해져 있다. 젖짜기 등 사람과 가축의 거리가 극도록 가깝게 된 경우 젖 짜는데 필요한 소리 외에 불러들이는 소리도 지른다.

# 유목민의 의복


*
기사전통
호복기사라는 말은 널리 알려져 있다. 여러 가지 유목문화 가운데서 호복, 즉 유목민의 복장은 비교적 일찍부터 중화세계에 도입되고, 당시 패션으로 크게 유행했다. 그 이유는 오직 유교적 예를 중시하여 만든 중국 옷보다 유목민 복장이 말 등에서 활쏘는 군사활동이나 노동에 더욱 적합했기 때문이다. 손쉽게 말을 타기 위해서는 바지를 입어야 한다. 몽골국 수도 울란바타르 북쪽에 있는 노인-울라 유적에서는 세계 최고인 흉노시대바지가 출토되었다.
* 의복의 재료
몽골족의 의복재료는 가축으로부터 얻는 것이 특징이다. 양털로 만든 펠트를 비롯해 5종 가축의 털은 저마다 다른 용도로 사용된다. 또한 그 가죽을 발효된 것으로 무두질하여 의복을 만든다. 모피 외에도 무명이나 비단도 의복의 재료로 널리 쓰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들은 주로 중국과 무역을 통해 수입되었다. 유목민들은 말을 비롯한 그 밖의 가축과 그 부산물을 제공하고 농경민들은 주로 비단을 가져왔다. 이른바 '견마교역'이었다. 유목민측에서 보면 이러한 교역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가축 때문이었다. 가축 외에 사냥에서 얻은 흑단비를 비롯한 야생동물 모피도 의복재료로서 중요시되었다.
* 의복의 특징
몽골족은 부족마다 옷 색깔과 디자인, 만드는 방법이 다르다. 의복의 문양은 각 부족집단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근거를 두고 있다. 예컨대 브리야트 몽골족은 모자 위에 바느질로 꿰맨 줄을 11∼13개정도 넣는다. 이것은 그들의 씨족집단 수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집단적 유대를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모자와 머리장식
몽골 남자들은 옛날부터 끝이 뾰족한 모자를 썼다. 모자 위에 다시 붉은 술을 장식한다. 이 붉은 술은 몽골족과 기타 민족을 구별하는 상징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몽골 서부 우량하이족 등 일부 집단 사이에서만 확인되고 있다.
여자들은 결혼하면 헤어스타일을 바꾼다. 우선 선명한 색상의 머리장식을 한다. 진주나 금, 은, 산호, 터어키석, 마노 등 보석을 붙인 머리장식은 호화찬란하고 그 무게가 수kg이나 되는 것도 있다.
* 델(몽골의복)
4계절 의복인 델은 기본적으로 오른쪽 깃을 앞으로 해서 입는다. 몽골과 달리 투르크계(돌궐) 제민족은 왼쪽 깃을 앞으로 해서 입는다고 한다. 13세기경 몽골 일부지역에서 왼쪽 깃을 앞으로 해서 입었다는 기록도 있다. 델 위에 부스라는 허리띠를 맨다. 허리띠는 몸을 따뜻하게 하고, 말을 탈 때 격렬한 요동으로 인한 내장의 손상을 방지하는 역할도 한다.
* 고탈(몽골신발)
여름용 고탈(장화)은 가죽과 천을 재료로 하고, 겨울용은 가죽과 펠트를 사용한다. 겨울에는 고탈안에 털실로 짠 양말을 신고 혹한을 이겨낸다.

- 한몽 문화교류원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