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재밋는몽골이야기

칭기스칸과 몽골제국 - 서론

몽골승마클럽 2007. 1. 13. 14:36

칭기스칸과 몽골제국

칭기스칸은 10만이 안되는 몽골 기마병을 이끌고 중국과 유라시아 대륙에서 동시에 전쟁을 벌여 승리하였다. 몽골군은 이동에 편한 가벼운 그물갑옷, 도망가면서도 뒤로 화살을 쏘아대는 전술등 당시로서는 가공할 만한 전투력을 갖춘 군대로서 공포를 이용한 심리전과 정보전을 자주 사용하였다. 이들은 몽골제국의 건설 자로서 인류사에 굵은 획을 그으며 하나의 정치 경제적 헤게모니 아래에 통합된 팍스-몽골리카를 구현하였다. 이러한 몽골군의 초인적이고 세기적인 힘의 본질을 안다면 우리는 거기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몽골제국은 인도와 동남 아시아의 일부를 제외한 아시아 전역과 유럽의 헝가리까지 석권함으로서 초원과 내륙아시아의 범위를 훨씬 넘는 사상 최대의 제국으로 성장하여 1세기 반 동안 세계와 시대의 중심에 섰다. 대원-울루스를 중심으로 서북 유라시아의 주치-울루스, 서아시아의 훌레그-울루스 등 크고 작은 일족 울루스 외에 다양한 인종과 회원국가인 지역정권, 재래왕조, 토착세력을 묶는 느슨한 세계연방이 되었던 것이다.

몽골은 세계사의 분수령이고 저수지로서 현대에 이르는 세계, 특히 구대륙에 큰 영향을 끼쳤다. 18세기까지 몽골의 유산을 업고 나타난 오스만제국, 러시아제국, 명-청나라, 무굴왕조, 사파비왕조 등에 서유럽 국가는 얼씬거릴 수 없었다. 산업혁명과 근대사회 속에서 강력한 화기와 해군력으로 군사화 한 서유럽이, 식민지화와 이권확대를 위하여 크고 작은 전쟁을 일으킨 후, 아시아 여러 나라를 분할한 것은 19세기 후반의 일이다. 이후 칭기스칸 몽골군의 전설적인 위업은 독일의 참모부 및 히틀러의 전격전 그리고 러시아의 군 운용체계 속에서 그리고 레닌의 적색 혁명이념에서도 구현되었다.


문헌기록

몽골의 통일과 정복이라는 사건을 알아보려면 그 무대의 광범위함으로 한문, 몽골어, 페르시아어 그리고 아라비아어 등으로 쓰여진 당시의 기록을 참고해야만 한다. 이중 한문의 원사, 몽골어를 한자로 표기한 몽골비사, 그리고 페르시아어로 쓰여진 집사를 3대 기본사료로 들고 있다. 칭기스칸의 생애와 초원에서의 패권장악을 위한 전쟁에 관한 기록은 몽골비사와 황금책에 많이 들어있다. 몽골비사는 현재 한자로 음역된 형태로만 남아 있으며 황금책은 오래 전에 사라졌으나 집사와 원사에 일부가 인용되어 전해지고 있다.

원래 황금책은 1000권으로 되어 있었으며 이중 126권은 책으로 엮어져 전해지고 나머지 874권은 자손 대대로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었다. 책으로 엮어진 것들은 사실과 이야기가 뒤섞인 인물이나 역사적 사건을 말하고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부분은 일부 몽골인들 외에는 비밀로 치부되어 구전으로만 전해졌다.

칭기스칸이 사망한 직후 케룰렌 강가에서 거대한 집회가 열렸고, 여기에는 많은 역전의 장군들이 모여 긴 밤을 영광스런 지난날을 회고하며 보냈던 것을, 적당한 순서로 배열한 것이 몽골비사이다. 따라서 작자는 몽골전사들의 업적을 서사적 시구와 창작된 대화, 낭만적이고 민속적인 주제를 이용하여 쓰고 있으나 칭기스칸의 청년시절과 초원의 패권장악을 위한 싸움에 참가한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사료적 가치는 매우 크다.

일칸국 가잔 칸의 지시로 재상이자 의사였던 라시드-알딘이 쓴 집사는 황금책을 비롯한 귀중한 궁정기록들을 참고하여 페르시아어로 쓴 거대한 몽골정사이자 14세기초까지의 유라시아 여러 지역에 관하여 쓴 종합역사서이다. 그 규모와 시야의 광대함, 특히 그 자료가 지닌 근본성격으로 이에 필적할 만한 역사서는 없다. 이로서 우리는 독자적이고 금기에 얽매이지 않으며 전사들의 기억이 생생한 이야기로 이루어진 비사와, 궁정사가들에 의하여 공식적인 형태로 재조정된 몽골의 역사를 알 수가 있다.

(참고: 본 시리즈는 원문은 http://jsyang2.com.ne.kr/homepage/history2.html에 올려져 있으며, 앞으로 총 8장까지 시리즈로 연재예정입니다)